2015년 5월 29일 금요일

이등병 일기 16 - 사막 유격 훈련

  26일부터 3박 4일로 유격훈련을 했다. 처음 입소할 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거였는데 퇴소한 지금은 유격훈련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 깨닫게 됐다.

  진짜 죽기 일보 직전까지 유격체조, 얼차려를 받은 것 같다. 유격훈련장 연병장이 사막처럼 느껴졌다. 분명 우리나라에는 사막이 없지만, 거긴 우리나라가 아니었던건지 끔찍하게 덥고 모래먼지도 많고 건조했다.

아휴... 싫다 싫어...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kormnd/8716252374 , 대한민국 육군, 라이선스 : CC BY-SA 2.0)


  교관이 체조대형으로 벌렸다가 본대형으로 모았다가 하는 걸 엄청 많이 시키는데, '동작이 굼뜨다', '목소리가 작다'는 둥 온갖 구실을 대가면서 반복시키는 바람에 한번 움직일때마다 일어나는 모래먼지가 여러번 계속 일면서, 나중에는 입에 진흙이 씹힐 정도였다.

  체조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퇴소하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온몸이 쑤시고 아픈데다가, 팔에는 멍도 여러군데 들었다. 멍든게 어디 부딫히거나 맞아서 생긴 게 아니고 오로지 체조만 하다가 생긴건데, 이때 처음으로 '아, 체조만 해도 멍이 들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유격체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깨닫는 한편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가 유격훈련할 때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그래서 교관들도 그걸 인지하고 점심 이후에 바로 유격체조를 하지 않고 오침 시간을 주고 네 시부터 훈련을 계속 진행했다. 정말 너무 더워서 오침이 없었다면 거의 해골이 될뻔했다. 텐트에서 처음엔 잤는데, 텐트 색이 어두운 색이라 햇빛을 엄청나게 잘 흡수해서 자다 깨보면 온몸이 찝찝하게 땀이 났다. 나중엔 텐트에서 나와서 나무 그늘이 있는 언덕에 CS 전투복을 깔고 누워서 잤다. 확실히 같은 그늘이라도 나무 그늘이 훨씬 시원하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참 신기했다.


  유격 때는 물을 아껴서 먹었다. 출발 전에 미리 대대 정수기에서 수통을 가득 채워서 갔는데, 너무 갈증이 나고 더워서 한 모금씩만 먹다가 나중에 교육시간이 끝나고 남은 물을 왕창 들이켰다. 물을 다 마시고 나서 500mL짜리인지 생수가 한통씩(거의 하루에 한 병인가 간부님으로부터 받았다) 보급돼서 그걸 수통에 채우고 마시고, 그걸로 손 씻고, 수저 씻고 했는데 많이 부족했다. 실제로 전쟁이 나면 이런 식으로 힘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간혹 선임들이 물 좀 달라고 하는 때도 있어서 주기 싫었던 적도 있었다. 똑같이 보급 받아서 먹는건데 누구는 아껴 먹고, 누구는 다 먹고 또 얻어먹고 하면 아껴먹는 사람만 손해보는 게 아닌가. 다행히 훈련이 다 끝나갈 무렵엔 물이 꽤 남아서 충분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괜찮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엔 대대장님도 오셔서 음료수를 왕창 갖다주고 가셔서 상황이 좀 나아졌다.

이러시면 안 되고 물을 아껴서 '드셔야' 됩니다...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kormnd/20014465416 ,대한민국 육군, 라이선스 : CC BY-SA 2.0)


  아무튼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힘든 점들이 이것들이다. 이외에 화장실이 푸세식인 것, 텐트 안에도 모래먼지가 많아서 잘 때 찝찝한 것, 불침번할 때 전투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것, 온몸에 알이 배겨서 계단 오르내리기나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것도 힘든 것, 너무 덥고 목말라서 따뜻하거나 뜨거운 음식은 거들떠보기도 싫어서 물배를 많이 채운 것, 군장에서 뭘 꺼냈다 넣었다 하기가 불편한 것(군장에 필요한 걸 넣으려면 정말 압축시켜서 넣어야했다)등이 있었다. 샤워 시간이 5분이라 짧은 것도 있었다. 유격을 내년에 또 해야하지만 일단 올해는 끝나서 너무 홀가분하다. 주말엔 물도 많이 마시고 잠도 실컷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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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1. 그래서
    평생을 얘기해도 모자랄 정도이겠구료.. 군대 이야기가ㅠㅠ
    참 고생들이 많쏘!
    피가되고 살이되는 인생의 자양분으로 남길 진정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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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등병 편지보다 이등병 일기는
    더더 짠하오ㅠㅠ
    구독할 수 있음.. 영광이오!
    재대하는 그날까지 내내 안전하고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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