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4일 수요일

토목 스크랩 - 미래 교통기술 어디까지 왔나 / 수돗물 맛 더 나아진다...맛·냄새 자동 분석시스템 개발

2015.06.24 국방일보

교통, 상하수도 분야

원문 기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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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속 100㎞ 이상으로 주행하는 차량도 무정차로 요금 납부를 할 수 있게 한 차세대 하이패스 시스템 ‘스마트 톨링’ 기술 - 기존 하이패스는 시속 100km/h 이상은 안됐나보다. 이게 상용화되면 톨게이트 안 지어도 되고, 주요 고속도로 진입로의 병목현상이 사라질 듯. 좀 높은 곳에 기계를 매달아도 요금 납부가 가능하다면.
  2.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평가받은 우리나라의 해수 담수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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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수도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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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수장에서 조류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
  2. 기존 분석시스템은 수동으로, 하루 1∼2회 분석에 야간 분석은 힘들었다. 새 시스템은 하루 30∼50회 물 성분을 실시간 자동 분석
  3. 경기 일대 정수장 중 한 곳
  4. 정수장이 좋아져도 상수관이 노후화되면 계속 맛, 냄새가 안 좋아질 것 같다.

2015년 6월 18일 목요일

일병 일기 10 - 내 보직은 청소병

● 여단장님 방문 설때문에 청소, 창고 정리. 내가 한 것 이외에 다른 병사가 한 일도 많을 것. 일단 내가 한 일만 적어보면,

퍼블릭 도메인


  * 우리 중대 화장실 청소 혼자 함. 생활관마다 청소 구역이 있는데 하필 화장실+그날 따라 생활관에 가용(경계근무나 일거리가 주어져 있지 않은 인원)이 나밖에 없었음. 혼자 하니까 쉽게 정신적으로 피로해지고 흥이 안 났다.

  * 월하물자 창고 박스 운반, 1층에서 4층으로 대대에 있는 모든 침낭 운반해서 쌓기. 이건 여러명이서.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자주 하니까 다리 아픔. 침낭 의외로 무거움. 스키파카도 한 스무개 있었는데 운반, 모자 결합, 옷걸이에 걸어서 널음.(일을 잘한다고 간부가 '사회에 있을 때 세탁소에서 일했었냐'고 함 ㅋ) 마지막까지 남아서 타 중대 간부 도왔는데 상점 달라고 할 걸 그랬음. 후회.

  * 대대 일반 쓰레기 수거장 정리. 일반 쓰레기 아닌 것 분리. 묶인 쓰레기봉투 풀어서 재분리. 더워서 냄새 심했음. 타 중대 쓰레기 중에 분리수거 안 된 게 있어서 짜증났음. 형광등을 화장실 휴지 잔뜩 모아둔 쓰레기 봉투에 넣고 묶어놔서 더럽고 냄새 났음.

  * 구막사 둘레 쓰레기 줍고 배수로 파내기. 별의 별게 다 나옴. 교보재 지뢰 휴즈, 기폭제, 옛날 장교 주기, 동기가 버린 이등병 때 주기. 쓰레기 주워야 하는 면적이 넓어서 귀찮고, 완벽하게 깨끗하게 한다는 건 불가능함.

  * 중대에 고장난 세탁기 세 대 1층으로 이동, 차량 적재. 실제로는 하나만 들었고, 손잡이 있어서 많이 힘들지 않았음.

  * 약간의 행정반 청소, 생활관 게시판 만들기.




● 밥값 톡톡히 함. 세상에 공짜는 없다.

● 점심 맛있고 양 많아 좋았음

● 5:30pm에 활동복 환복 지시. 밤에 불침번 있나 해서 저녁에 근무자 신고 있을까봐 계속 군복 있고 있으려 했는데 다행히 오랜만에 불침번 없어서 옷 갈아 입었음.

● 저녁 청소 시간에 화장실 청소 또 함. 타일 사이에 때 밀기(세탁 세제 이용), 조 일병이 막힌 변기 수압으로 두 개나 뚫음. 이럴 땐 쓸만 하군.

● 잘 때 드는 느낌 : 폭풍같이 일만 한 하루였다. 눕자마자 거의 바로 잠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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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7일 수요일

일병 일기 9 - 구석탱이에서 선임들 사이로

  선임들이 생활관을 바꾸자는 제안을 해왔다. 우리 생활관은 건물 한 구석에 있어서 선임이나 간부가 지나갈 일이 적어서 뭔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해도 걸릴 일이 잘 없었는데, 그래서 '언젠가 선임들이 이 점을 노리고 바꾸자고 할 것이다'하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바꾸려는 생활관은 패티김 생활관으로, 행정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생활관이다. 생활관을 옮기면 선임, 간부의 눈에 더 자주 띄게 돼서 생활을 더 잘 해야하는 단점이 생기지만, 나에게는 장점이 많이 생겨서 난 이사에 찬성했다.

  첫 번째 장점은 책 읽거나 공부하러 가기 편하다는 점이다. 이게 가장 나에겐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행정반의 상담실이나 본부중대에 있는 도서관이 그동안은 상당히 멀어서 한번 갔다오기 시간이 애매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게 돼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TV를 안 보기로 마음먹은 터라 더 잘 된 것이다. 내 동기들은 이제 날 신경쓰지 않고 TV를 볼 수 있으니 좋고, 나는 TV한번 보려고 눈치보지 않아도 돼서 서로 잘 됐다.

  두번째 장점은 선임, 간부의 눈에 많이 띄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몰래 뭘 해도 잘 안 들켜서 규칙을 대부분 따르는 편인 내쪽이 손해보는 것 같았는데, 앞으로는 더 많이 혼나게 될테니까 쭉 잘 한다면 반사 이익을 챙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세번째 장점은 가용병력 부를 때 먼 거리를 뛰어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가용 불러서 뛰어갔더니 이미 선임들이 필요 인원을 다 채워놔서 허탕치고 생활관으로 돌아간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당당히 일 도와주러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꾸 이렇게 눈도장 찍다보면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많이 될 거라 예상한다.

  그 외에도 PX랑 가까운 것, GPS바꾸기 편한 것, 일병 전화기가 가까운 것 등 자잘한 장점들이 많다. 물론 단점들도 있지만 그런 건 그냥 크게 불편한 건 아닌 것 같다.

  생활관 바꾸는데 모두 동의한 후 중대장님께 대표병들이 찾아가 바꾸기로 한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 중대장님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선임들이 압력을 넣은 게 아니냐'고 하며 선임들에게 바꾸는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선임들이 대답을 했지만 중대장님은 여전히 못 믿으셨고, 그러다 생활관 이사가 무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나섰다. 진짜 이 일기에 쓴 내용을 포함, 온갖 자잘한 이유까지 다 대고 단점까지도 긍정적으로 포장해서 바꾸는 게 우리에게도 이익이라는 걸 쫀쫀하게 어필했다. 평소에 말이 잘 없어보이는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많이 도와줬으니 선임들이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생활관 바꾸는 걸 원하기도 했고. 중대장님은 결국 이사를 허락하셨고, 그렇게 생활관을 바꿔서 지금은 새로운 곳에서 살고 있다. 바꾸니까 사람 왕래도 많고 좋은 것 같다. 새 출발하는 기분이 몹시 상쾌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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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6일 화요일

일병 일기 8 - 총기 부품 실종 사건

  주간 사격이 끝나고 저녁에 총기손질을 했다. 나는 신교대에서, 총기 분해시 노리쇠 뭉치 안에 있는 톱니바퀴 달린 길쭉한 부품은 괜히 분해했다가 거기서 나오는 조그만 부품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그 길쭉한 건 냅두라고 배워서 총기를 완전히 분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작은 부품을 잃어버리는 일이 동기에게 일어났다.

  잃어버린 건 한 1cm밖에 안 되는 얇은 금속 핀이었는데, 그걸 잃어버린 동기가 주변을 기어다니면서 샅샅이 바닥까지 다 봤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까진 '그래도 끈기를 가지고 찾으면 마침내 찾지 않겠나'하고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곧 급박한 상황이 닥치게 되었다.

김 일병! 영창 가자!
(라이선스 : 퍼블릭 도메인)


  방송이 나오는데, 야간 사격하는 인원들은 필요한 걸 챙겨서 집합하라는 것이었다. 그 인원 중에 부품을 잃어버린 동기도 있었다! 우리는 약간 당황했고, 몸에 땀이 스멀스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 영창가는 거 아니냐'는 둥, '사격 어떻게 할거냐, 큰일 났다'하는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각자 닦던 총을 내버려두고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같이 그 핀을 찾으려고 애썼다.

  집합 시간이 임박해서도 우리는 그 핀을 못 찾아서 이 일병이 자기 부품을 빼서 그걸 대신 끼우고 나가라고 했다. 문제의 장본인은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걸 찾는 사람에게 PX에서 2만원어치 먹을 걸 사주겠다고 하고 나갔다. 그가 나가고 한참을 더 찾았는데 그걸 발견할 수가 없었다.

  찾기를 포기하려던 찰나, 이 일병이 김 일병(잃어버린 애) 근처 의자 위에서 그 핀을 발견했다. 나도 의자 위를 봤었는데 왜 그땐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찾은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십년감수가 어떤 느낌인지 김 일병은 이 날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 일병은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김 일병을 한심한 놈 취급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총기는 함부로 세부 분해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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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 일기 7 - 몰락한 사격 왕(?)의 귀환

  사격장 표적은 총알이 적중했을 때 자동으로 뒤로 넘어간다. 오전부터 사격을 시작해서 오후까지 하는데, 1, 2차 사격에 모두 합격하면 금요일에 추가로 사격하러 가지 않는다고 해서 추가 사격을 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총을 쐈다.

  첫 사격 결과는 지난번 했던 것과 똑같이 11발이었다. 1차 합격했다는 사실에 난 기분이 좋아졌다. 2차에 반드시 합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음 사격을 기다렸다. 한편으론 '사격 별로 어렵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긴장하지 말고 여유있게 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2차 결과는 실망스럽게도 7발이었다. 200m 표적을 하나도 못 맞췄는데, 표적이 뒤로 넘어가지 않을 때마다 좌절감이 들었고, 옆에서 황 하사님이 실망스럽다는 제스쳐를 취해서 더 기분이 상했다. '내가 약간 자만해서 급하게 쏜걸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사선에서 내려와 탄피를 반납했다. 1차보다 확실히 2차에 여유있게, 긴장하지 않고 쏜 느낌이 있었다. 사격을 끝내고 PRI 교장으로 가니까 선임들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동기들은 1차 때 운이 좋았던 거라며 살짝 놀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내가 부사수를 해 줬던 타 중대 인원도 1차 합격자였는데, 나한테 와서 '표적이 안 넘어가지 않느냐'고 말하는 거였다. 나는 '너무 멀어서 맞췄는지 못 맞췄는지 분간이 안 간다'고 답했고, 그 병사가 자신도 2차 불합격인데 너무 터무니없이 명중률 차이가 나서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설마 '표적이 고장나는 경우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번 다음 조들은 어떻게 되나 보기로 했다.

  한참을 PRI 하면서 기다리는데, 간부가 한 명 오더니 '표적이 고장난 곳이 좀 있어서 재사격을 한다'고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잘못으로 7발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었고 '내가 그렇게 못 쏘지는 않지~'하는 생각도 들면서 기분이 나아졌다. 그렇게 다시 실시한 사격의 결과는 12발. 1발이 예전 기록보다 늘어서 너무 기분이 좋고 다시 사격한 보람이 있다고 느꼈다. 표적때문에 한번 몰락했다가 다시 부활하니까, 이 일기의 제목을 '몰락한 왕의 귀환'이라 지을만 하겠다. 금요일에 또 사격할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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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5일 월요일

일병 일기 6 - 선임에게 불똥 튀기지 말자 / 첫 후임이 왔는데 사실 내 코가 석자라서...

<2015.6.14.일>
(선임에게 불똥 튀기지 말자)

  오늘 다목적실에 모여서 상병된 지 얼마 안 된 군번 이하 전체가 혼났다. 나는 왜 갑자기 혼나는 건지 좀 얼떨떨했다. 내 생각에 난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내가 맡은 일을 하면서 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날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태도 문제로 모여서 혼나는 것 같았다. 대강 '짬이 안 차면 안 찬대로 행동하는 게 맞다'는 게 요지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해당 내용에 어긋나는 사소한 규정 위반이 쌓이고 쌓이다가, 누군가 선임 뒷담화를 하다가 걸리면서 선임들이 '얘들 안 되겠다. 그동안 편하게 대해줬더니 우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한번 날 잡아서 털기로 한 것 같았다.

  어딜 가든지 입 조심이 중요한 것 같다. 얼마전에도 그것때문에 일기를 썼는데, 이번 기회에 더 확실히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한테 아직 문제가 많이 없더라도 앞으로 생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또 사소하게 규칙 위반하는 것도 안 해야겠다. 자신만 혼날거라고 여태는 생각해왔는데, 한명 때문에 선임들이 혼나는 경우가 꼭 생기기 때문이다.







<2015.6.15.월>
(첫 후임이 왔는데 사실 내 코가 석자라서...)

  오늘 처음으로 후임병이 생겼다. 저녁무렵에 생활관에서 쉬고 있는데 신병이 왔고, 지금 행정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호기심에 행정반에 살짝 가 봤다. 짐을 담은 의류대가 놓여있고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은 천○○이었다. 이름만 봤을 땐 약간 드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후임인데 그러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하면서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얼마동안 동기들과 잡담을 하고 있으니까 문이 열리며 이 일병이 신병의 의류대를 메고 신병을 데리고 들어왔다. 다행히 이름처럼 거칠 것 같은 애는 아니었다. 첫인상은 몹시 조용한 사람으로 보였다. 약간 멍한 것 같이 생겼는데, 세종대의 호사카 유지 교수 닮은 애였다. 실제로 성격이 몹시 조용해서 애들이 나랑 비슷하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선임들하고 있을 땐 되게 조용한데 선임들 눈에 저렇게 보이겠구나'하는 예상이 들었다. 왜 선임들한텐 동기들에게 하듯이 말장난도 하고 먼저 말도 걸고 하는 게 안 되는 걸까? 사실 선임이나 후임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좀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나보다 더 조용하고 특징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기들이 하는 말이, 걔가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거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몇 없고 대부분 사람들이 판타지, 로맨스, SF같은 재미를 위해 읽는 책을 보는 걸 독서라고 하니까 나랑 닮았다 하기엔 아직 섣부른 것 같았다. 그런 독서는 독서라기보다 오락에 가깝다.

  지금 걱정해서 뭐할까? 나중에 걔도 동기들이 들어오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후임이 들어오니 안 좋은 점도 생겼다. 동기들끼리 있다가 동기 아닌 사람이 같은 방에 있으니까 서로 불편한 것 같다. 약간 귀찮기도 하다. 아직 2주대기라 어딘가 가야할 때 전우조로 누군가 같이 가 줘야 하고, 군 생활 예절이나 규칙을 알려주는 것도 성가시다. 관물대, 침상 정리 방법도 알려줘야 했다. 이렇게 말하니 야박한데, 솔직히 안 귀찮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필요한 걸 알려줘서 빨리 독립할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중대 대부분 인원이 사격하러 갔을 때는 천 이병 혼자 있었는데, 그땐 좀 심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크게 신경쓰이는 건 아니었다. 아직 친해질 일이 아예 없었으니까 당연한 거다. 경례를 그동안 선임한테 하기만 하다가 이제 받는 입장이 되니까 무척 어색했다. 군 생활이 길다고 해도 벌써 후임이 들어올 시기가 됐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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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1일 목요일

일병 일기 5 - 너 자신을 알라 / 오랜만에 일하니까 좋다

<2015.6.11.목>
(너 자신을 알라)

  나의 현재 신분은 군인이고, 공병이다. 군대에 왔을 때 자기 계발할 시간이 의외로 좀 주어져서 책도 많이 읽고 일기도 쓰고 전공 공부도 했다. 그런데 오늘부터 병사들에게 요구되는 능력 수준이 높아진다는 공지를 들었다. 당연히 1신분이 공병이니까 그래야한다는 생각은 쭉 가지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현실화되니까 좀 아쉬웠다.

  자기계발 할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전공 외에 내가 관심있는 것들을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다. 이렇게 되니까 책을 잔뜩 가지고 있어도 별 필요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솔직히 지금도 집에서 가져온 전공책들은 하나도 보지 않는다. 괜히 짐만 되니까 산업기사 수험서만 남기고 모두 돌려보내야겠다. 아...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은 적으니까 절제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아니다. 힘들게 받은 책들인데 일단 장기적으로 전역 전까지 꾸준히 본다는 생각으로 갖고 있어야겠다.)









(오랜만에 일하니까 좋다)

  2주정도 계속 경계만 서서 생활이 약간 단조로워지고 맨날 만나는 사수 선임만 줄곧 봐서 약간 심심했는데 드디어 오늘 가용 병력이 돼서 다른 선임들 여럿과 함께 땀흘려 일을 하게 됐다. 같이 일한다고 엄청나게 친해지는 건 아니지만 가끔 서로 물건 나르겠다고 다른 사람이 든 걸 뺏는 장난도 치고 하면서 약간은 가까워지는 것 같다.

  단순히 시키는 일만 하면 단조롭고 지루하겠지만 일하는 방법을 효율적인 걸로 하려고 궁리한다거나 내가 할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어도 한가하게 멀뚱멀뚱 쳐다보지 않고 그 다음 필요한 단계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다같이 일사천리로 일을 해서 기분이 좋았다.

  가용 병력이 좋은 점이 가용을 불렀을 때 선임들과 같이 일하러 감으로써 눈도장도 찍고 말 한마디라도 더 하게 되는 점인 것 같다. 그리고 일머리를 좀 기를 수 있다는 것도 있다. 누군가 말하길, "일 열심히 하는 후임보다 일을 잘 하는 후임이 좋다(그렇다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님)"고 했는데 오늘 서로 의사소통도 하고 질문도 하고 아이디어도 내면서 빠릿빠릿 일처리를 잘 한 것 같아서 뿌듯하고 기뻤다. 이런 느낌을 계속 잘 살려서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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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5일 금요일

일병 일기 4 - 시간과 생각의 퇴소행군

행군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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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PARTURE 


  유격 퇴소행군을 하게 됐다. 이날 유격 복귀한 인원도 있고 다른 일 하느라 지친 사람도 있어서 중대장님이 군장을 너무 무겁게 싸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그래도 얼마나 힘든지 호기심이 있었고 실전 상황에서는 어차피 완전군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 아직 못 받은 텐트와 지주핀을 제외한 모든 물품을 쌌다. 그러다가 잠시 집합해서 코스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오르막이 심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야전삽과 침낭은 뺐다. 체력이 아주 좋은 게 아닌데 괜히 많이 넣었다가 나 때문에 행군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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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ARLY PERIOD


  처음 출발하고 나서 큰 도로를 따라 약간 가다가 벗어나서 도로 아래 통로를 지나 집들 몇 채가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맨날 다니던 곳만 차로 다니다가 걸어서 생판 모르는 곳을 지나가니까 왠지 여행하는 느낌이 들고 좋았다. 얼마간 마을 있는 데를 지나 계속 걸으니 점점 도로가 산속으로 이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힘들지 않아서 주변 경관을 구경하고, 도로나 댐, 지형같은 것들을 관찰하면서 갔다.

대강 이런 풍경이었음
https://farm9.staticflickr.com/8380/8516402570_87e7a0d177_b_d.jpg (CC BY-SA 2.0)


  행군 코스를 따라갈수록 주변 풍경이 점점 더 멋있어졌다.  우리 행군 대열은 크고 작은 산들에 둘러싸여 마치 우리가 열을 만들어 지나가는 작은 개미떼처럼 느껴졌고, 적막 강산 속에서 인간들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스스로 생각하게 됐다. 숲이 참 울창하고 아름다웠다. 세모꼴로 일관성있는 모양으로 생긴 침엽수림이 넓은 면적에 빼곡히 메꿔져 있는 것이 마치 러시아나 유럽의 숲 모습같기도 하고,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숲같기도 했다. 내가 여태 강원도에 있었지만 이번이야말로 진짜 강원도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삼림이 아름답고 웅장했다. 특히 사람이 거의 없어서 고요하고 적막해서 더욱 자연의 거대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가다가 어떤 부대 주둔지를 봤는데, 넓은 지역에 걸쳐 있는데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신기했다. 그곳의 시설이 지은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고, 산 위에 민간 거주지나 상업지역도 없이 달랑 혼자 있어서 마치 영화속에 나오는 비밀기지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군복무하는 사람들은 좀 외롭거나 심심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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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LOPES


  몇번 오르락 내리락 가벼운 경사지역을 통과하고 나니까 선임들이 이 행군 코스 중 가장 어렵다고 하는, 오르막이 연속으로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 구간 직전에 근처 공터에서 잠깐 쉬고 다시 행군을 시작했는데 미칠듯이 힘든 건 아니어도 지속적으로 힘든 건 있었다. 신교대가 백두산 신병교육대였는데 그때의 행군 코스에 비하면 경사가 심한 건 아니었다. 백두산 신교대에서 이미 단련돼서 그런 것도 있고, 자대 와서 체력단련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아예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힘든 길은 아니라고 느꼈다. 속으로 힘들때마다 '신교대때의 난코스도 통과한 내가 이 정도에 포기할 수는 없지'하기도 하고, '한번 백두인은 영원한 백두인'이라는 약간은 촌스럽지만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신교대 부심(?)을 떠올리며 꿋꿋이 버텼다.(참... 그게 뭐라고, 지금 생각하면 쪽팔리면서도 쓸모있었던 구호라고 느껴진다) 또 유격 때 교관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싸움은 대개 안 좋은 것인 경우가 많지만 딱 한 가지 좋은 싸움이 있다.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맞는 말인 것 같다.(지금 써놓고 보니 오글거리는데 그 상황을 이겨낼 힘을 주는 유용함이 있었으니 오글거린다 해도 상관없다)

  오르막을 계속 올라가니까 군장때문에 어깨가 아팠다. 보급받은 군장의 가방끈이 군장용 끈이 아니라 X반도라서 목 주위와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땀도 많이 나서 전투복 상의 앞주머니에 넣어뒀던 수첩과 임무카드가 눅눅해지기도 했다. 머리에도 땀이 나서 방탄헬멧 안쪽에 물이 잔뜩 고이고 그게 모였다가 헬멧의 챙 부분을 타고 자꾸 안경 렌즈로 떨어져 시야를 가렸다. 그래서 나중엔 땀을 닦으려고 가져갔던 손수건을 정사각형 모양으로 접은 다음, 정수리 위에 올리고 그 위에 헬멧을 썼다. 그렇게 하자 땀이 시야를 가리는 일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대신 휴식시간에 방탄헬멧을 벗어서 보면 손수건이 축축하게 포화상태가 되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오르막 코스는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코스가 굽이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마다 다음 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나무들이 커브길을 가렸기 때문이다. 앞이 안 보이고 예전에 와본 길도 아니다보니까, 올라가면서 '부디 커브를 지나면 평지거나 내리막이었으면...'하고 바라게 되었다. '이번만 지나면 내리막길이다... 계속 오르막일 리가 없어...'하면서 희망적인 생각을 계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오르막은 계속 나왔다. 도로를 설계한 사람이 야속했다. 요즘 차가 좋다고 아예 오르막만 만든걸까? 설계하다가 귀찮아서 곡선으로 서서히 올라가는 길 말고 그냥 쭉 이어버린걸까? 한참을 올라가기만 하니까 생각하고 기대하는 데 쓰는 에너지도 아까워서 무념무상 내 발만 쳐다보면서 산을 올랐다. 오르막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지 않기 위해서기도 했다. 경계근무 할 때 시계를 안 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공부할 때도 이렇게 하면 집중, 몰입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진도가 얼마나 남았는지 보는 것과 얼마나 공부했는지 보는 행동이 종종 공부를 지루하게 만드니까.

  힘든 상황에 처하니까 동기들 생각도 났다. 분대끼리 행군해서 다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다들 어디 있을까, 잘 따라오고 있겠지'하는 생각이 가끔 났다. 휴식을 취할 때 동기들 모습이 간혹 보였다. 허 일병은 담배를 가져왔는데 선임들한테 많이 뜯겼다.(나중에 선임들이 갚았던가 그랬다) 허 일병이 면회 외박 갔다온지 얼마 안 돼서 담배를 좀 가지고 있었던 반면, 유격 기간동안 PX가 안 열려서 대부분의 선임들은 담배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때 마침 허 일병이 담배를 꺼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 허망한 표정을 바라보는 것이 비흡연자인 나로서는 아주 재미있었다. ㅋ 그 외에도 이 일병이 '허니버터 아몬드'라는 허니버터칩 비슷한 물건을 가져왔는데, 역시 순식간에 그 아몬드가 멸종되어버렸다. 어떤 선임이 "그거 혹시 행군하느라 전부 지쳐있는데 몰래 한 두개씩 먹으려고 가져온건 아니지? 분명 나눠먹으려고 가져왔을거야~"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이 일병이 허니버터 아몬드를 봉지째 갖고 있다는 사실을 중대 전체에 어필해서 이 일병의 퇴로를 차단했고, 그 바람에 모두가 히죽거리면서 즐겁게 이 일병의 소중하고 구하기 힘들다는 허니버터아몬드를 나누어 먹었다.

  휴식을 하고 나면 땀이 식고 증발하면서 추워졌다. 너무 힘든 코스가 아니라면 한번정도 덜 쉬어도 됐을 것 같았는데 나보다 체력이 안 좋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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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TS 

뭐... 그렇다고 방독면까지 썼던 건 아니고...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d/d1/Battalion_march_with_gas_mask.jpg/1280px-Battalion_march_with_gas_mask.jpg (퍼블릭 도메인)


  오르막 난코스가 끝나자 이후로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 펼쳐졌다. 이제 경사가 아닌, 거리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 길에서 벗어나 공터에 열을 맞춰 군장을 내리고 앉았다. 밥은 부대에 남아있던 환자들과 5대기 인원들이 만들어 온 것 같았다. 봉지에 싸인 주먹밥과 생수 작은 것 한병씩이 지급됐다. 배가 몹시 고팠는데 주먹밥 덩어리가 상당히 크게 만들어져 있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적당히 양념도 되어 있어서 맛도 있었다. 평상시라면 밥 먹을 때 물은 잘 안 마시는데 이날은 이상하게 물을 동시에 들이켜면서 주먹밥을 먹었다. 다 먹고 나니 가다가 토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다행히 위장이 제 역할을 잘 해주어서 처음에만 트림이 나고 나중엔 괜찮아졌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계속 행군을 했다. 도로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주변에 민가 하나 없고 그렇다고 논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숲만 잔뜩 우거져 있거나 사람 흔적 거의 없는 풀밭이나 공터만 나와서 도대체 이 길고, 넓은 면적의 지역을 통과하는 포장도로가 뭐와 뭐를 연결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고 오직 강원도의 삼림 속에 개미떼처럼 걸어가는 우리만 있었다. 우주여행을 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엄청 먼데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갈 때 엄청나게 넓은 공간에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멋진 우주배경만 보이니까 왠지 비슷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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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GHT MARCH 



  행군을 오래 하다보니 밤이 됐다. 처음엔 별로 안 어두워서 대부분의 지형지물이 보였는데 시간이 더 되니까 숲속에 누군가 매복해있다면 절대 모를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두웠다. 행군 후반부엔 드문드문 집들이 보이고, 밭이 있다던지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방은 계속 쥐죽은 듯 조용했고(이 중사님의 핸드폰 노랫소리, 다른 병사들이 흥얼거리며 부르는 노랫소리를 제외하면) 그래서 불꺼진 집들을 지나갈 때마다 '저기서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편하게 누워서 쉬고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꼈다. 완전히 날이 깜깜해졌을 때는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 있고 다른 빛이라고는 가끔 지나가는 차의 전조등이나, 간부들이 들고 있는 경광봉 빛 같은 게 전부였는데, 이때 보이는 어떤 집들은 귀신 나오는 집처럼 으으스해 보였다. 만화캐릭터 조각상들이 큼지막히 몇 개 마당에 있는 집이 있었는데, 낮에 봤으면 괜찮게 보였겠지만 밤에 보니 괴기스럽게 보였다. 혼자 그 길을 갔다면 조각상들이 깨어나서 뒤쫓아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외국 게임중에 프레디의 뭐시긴가 있는데 그 게임에서 나오는 이상하게 생긴 동물 인형 탈들이 떠올랐다.

  어떤 농장을 지나갈 때는 왠지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밭이 넓게 계단식으로 펼쳐져 있고, 사이사이 하얀 가로등 빛과 취수탑 물탱크 같은 게 드문드문 있었는데, 우리는 밤에 몰래 행군을 하고 있고, 가로등불은 감시초소의 불빛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밤에 간부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차량이 지나갈만한 도로와 교차로에서 경광봉을 들고 도로를 통제해준 점이다. 사실 맨 처음 출발할 때 경광봉을 든 간부들은 완전군장 하지 않은 걸 보고 '저 사람들은 너무 편하게 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만일 그 간부들이 완전군장을 하고 차량통제를 했다면 피로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질수도 있고, 병사들 인솔을 잘못해서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사들도, 간부들도 저마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거고 그걸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하루전에 썼던 일기와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괜히 부러워하지 말고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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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RIVAL 



  이제 행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낯선 풍경만 봐오다가 저 멀리 부대 주둔지의 불빛이 보이고, 근처의 모습은 탄약고 경계근무 설 때 멀리 보면 보이던 밭의 모습이었다. 부대에 다 와간다는 것을 깨닫자 너무 반갑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가출했다가 집에 돌아가는 기분도 들고 도착해서 따뜻한 물에 샤워한다음 다리 쭉 뻗고 침대 위에 누워 쉴 생각을 하니 아주 설렜다.
  
  위병소를 통과하니까 몇몇 병사, 간부들이 마중을 나와 환영해주는 게 보였다. 책상을 몇 개 들고 나와서 그 위에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놓았고, 복귀하는 인원들은 한잔씩 집어들고 마시면서 그동안 힘들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막걸리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엔 너무 지쳐서 막걸리인 줄 모르고 밀키스인줄 알았다. 시원하고 아주 달달한데다가 살짝 탄산기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탄산이 아니라 알콜기였다. 어찌됐든 그 상황에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뭐든 시원하고 달달하고 액체이기만 하면 만족스럽게 마실 수 있었다. 일부러 아껴서 한모금씩 마시고 중대 인원들 중 거의 마지막으로 집합장소인 연병장으로 갔다.

  잠시 집합해서 인원체크하고 중대 다목적실에 가니까 포도주스 캔 음료와 컵라면이 제공됐다. 난 더운 건 먹고 싶지 않아 포도주스만 챙겼다. 행군할 때 포도주스가 계속 생각나서 입맛을 다셨는데 우연히 그걸 줘서 너무 기뻤다. 그걸 마시고 나서도 거의 600mL정도 남은 수통 물을 벌컥벌컥 다 마셔버렸다. 유격이나 행군 이후에는 아무리 물배를 채워도 행복하고, 물이야말로 최고의 음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산하고 그동안 잘 못 봤던 동기들의 얼굴을 보니까 무척 반갑고 좋았다. 같이 고생하면서 행군했을 것을 떠올리니까 더 그랬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고 거지꼴로 거북이 등딱지같이 군장을 멘 모습이 볼만했다. 생활관에 가서 군장을 풀고 짐 정리를 하는데 대대 목욕탕이 열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틀림없이 목욕탕에 사람이 왕창 모일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동기들은 그냥 귀찮으니까 대대 목욕탕 가지 말고 중대에서 씻고 빨리 자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명절에 고속도로가 막히니까 국도로 가는 것처럼, 대대 목욕탕에 사람이 몰린 틈을 타서 사람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대 샤워실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계획에 흡족해하며 중대 샤워실로 갔는데, 의외로 샤워실이 초만원이었다. 이대로라면 대대 목욕탕에 사람이 이미 가득 차서 중대에서 사람들이 씻는 걸거라고 예상하고 우리는 약간 실망해서 조금 이따가 씻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다시 생활관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귀찮고, 한번도 안 가본 대대 목욕탕 모습을 구경이라도 해보자고 생각하고 같이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이 가득한지 아닌지는 확인해봐야 아는 거니까.

  정말 의외로, 대대 목욕탕에 있는 인원은 열 명에서 스무 명 사이밖에 안 됐다. 사람들 생각이 다들 비슷한 건지 대대 목욕탕에 온 사람들이 너무 없어서 신기했다. 아무튼 한적하게 씻을 수 있으니까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재빨리 옷을 벗고 씻으러 갔다.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가만히 허공에 기대어 서서 눈만 감고 있어도 피로가 싹 풀리면서 행복감이 밀려왔다. 때와 함께 피로감도 같이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씻는 걸 끝내고 중대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동기와 함께 "어깨가 피들스틱 관절같이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며 농담을 하면서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와서 바로 그 어깨에 파스를 바르고 자리에 누웠다. 금요일이었지만 TV연등따위는 원하지 않았다. 그정도로 피곤했고, 차라리 수면 연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도 다음날 기상 시간이 30분 늦춰졌다는 방송이 나와서 기분 좋게 잘 수 있었다. 유격 기간동안 힘든 체조도 하고, 경계도 마구 들어가고, 행군도 했던 스스로가 대견스러웠고, 어떻게 이 짓을 다 버텼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필름이 끊기더니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게 됐다. 큰 훈련 하나를 마쳤다는 사실이 정말 든든하게 느껴진다. 아니 잠깐... 이 짓을 내년에 또 해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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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 일기 2 - 나방 학살


  새벽 다섯 시에 경계를 나갔다. 총기 안전검사를 마치고 탄약고에 도착해 고가초소에 올라가서 부사수 자리에 나방이 많은지 확인했다. 부사수 자리 바로 옆에 외등이 있어서 밤에 나방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아침에도 그런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숫자는 많았지만 야간에 비해 아주 잠잠했다. 밤에는 불빛 주위로 엄청나게 날아다니면서 '혹시라도 나방이 내 얼굴에 달려드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데, 의외로 다섯시 쯤엔 나방들이 전부 초소 방충망, 벽, 바닥에 앉아있었다.

  몹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앉아있는 나방이 많아서 싫었고 그 나방들을 살려두면 개체수가 더 많아지고 계속 우리를 짜증나고 역겨운 감정이 들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죽이고 싶었다. 에프킬라가 있었다면 간편한 방법으로 한꺼번에 나방을 없앨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초소에는 그게 없었다. 그래서 난 바닥에 있는 나방은 군홧발로 밟아 죽이고, 벽에 붙은 건 대검을 눕혀서 납작한 부분으로 죽이는 걸 고민했다. 불안한 것은, 한마리씩 죽이다가 나방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갑자기 우르르 나한테 달려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일단 무리에서 가장 떨어져있는 나방을 한 마리 꾹 밟아보았다.

  다행히 다른 나방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밟은 나방을 확실히 죽이려고 발을 떼지 않고 바닥에 붙인 채 쭈욱 끌었다. 그렇게 하자, 발을 들었을 때 나방은 확실히 죽어서 으깨져 있었다. 나는 나방들이 거의 혼수상태급으로 자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무리에서 가장 멀리있는 놈이라도 떨어진 거리가 정말 먼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간 자신감이 붙은 나는 그 징그러운 커다란 까만 눈알과 북실북실한 털, 옛날 TV 안테나같은 더듬이의 모습을 자꾸 떠롤리지 않으려 애쓰면서, 한마리씩 차근차근 죽여 나갔다. 거의 다 죽였을 때는 마치 지저분한 방 청소를 조금 한 것처럼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방을 죽이고 나서, 사수와 수다를 떨다가, 경계도 섰다가 하다보니 시간이 다 되어 교대를 하고 다시 부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 외등이 두개나 달려서 나방이 제일 많이 모이는 전봇대 옆을 지나가는데, 그곳 역시 한밤중에 비해 조용해지긴 했으나 나방이 잔뜩 있었다. 묘사하자면 전봇대에 하얀 버섯이 잔뜩 핀 것처럼 나방이 많이 붙어있었고, 전봇대 아래쪽 풀밭에도 나방이 잔뜩 모여있었다. 여기서 생물 교과서에서만 보던 나방의 보호색 효과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흰 나방들이 토끼풀 군체 근처의 클로버 잎들 위에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에 나방이 아니라 토끼풀이 피어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전봇대에 앉은 나방들은 이런 느낌...
N. A. Naseer / www.nilgirimarten.com / naseerart@gmail.com [CC BY-SA 2.5 in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5/in/deed.en)], via Wikimedia Commons


풀 위에 앉은 나방은 이런 느낌...
By Matt Lavin from Bozeman, Montana, USA (Trifolium repens  Uploaded by Tim1357) [CC BY-SA 2.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 via Wikimedia Commons



  오늘 보고 죽인 나방이 꽤 많은데 앞으로 남은 나방들이 더 커지면 어떻게 경계근무 때 감당할지 모르겠다. 방역차가 대대를 한번 돌면서 다 죽여주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우리한테 그런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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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4일 목요일

일병 일기 3 - 힘들다는 얘기는 조심해서...

  일반적으로 드는 생각이 짬(군복무 경력)이 어느정도 되면 일을 좀 덜 하고 쉬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무리 선임이라도 후임들에게 좋은 선임으로 보이고 싶다면 할 건 해야하고, 그걸 힘들다고 함부로 다른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느끼는 건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입대전엔 내 코가 석자라고, 내가 제일 힘들게 사는 줄 알았었고 불평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좀 생각해보니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누구나 귀찮고 피곤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만약 이런, 모두가 자신이 힘들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누군가 자기 일이 제일 힘들다고 티를 낸다면, 다들 자기 주관대로 생각하므로, 그걸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그것이 불화로 이어지거나 서로 뒷담화를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은 주관적이기 쉬우니까, 주변사람들의 기분이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데, 그게 하필 더 힘든 일을 하는 후임병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 이게 그 선임의 고의적인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동기들끼리 있을 때 힘들다는 티를 낸 적이 있으니까 그 선임을 이해할 수 있다. 누차 말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만의 상황만 보기 쉬우니까. 앞으로 내가 그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을 통해서 교훈을 얻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라도 누군가에겐 마음상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내가 힘들어도 다른 사람들도 어딘가에서 집단을 위해 애쓰고 있을테고, 그걸 비교할만한 상황을 만드는 건 불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다는 건 내가 결정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남이 내가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그걸 '힘든 일'이라고 인정해줄 때가 정말로 '할만큼 했다'고 받아들여질만한 상황이 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남이 쉬운 일을 한다고(소위 "꿀빤다"고 하는 것) 함부로 얘기하지도 말아야겠다. 그러기보다 '저 사람이 있어서 나한테 맡겨질 수도 있었던 일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게 됐구나'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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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3일 수요일

일병 일기 1 - 일병이 돼서 좋은 점 / 이미 유격 갔다와서 생활관 혼자 쓰는 줄 알았더니... / 나방 먹는 참새

2015.5.29.금
(일병이 돼서 좋은 점)

  일병 진급을 했다. 이등병때는 뭔가 잘못을 해도 약간 봐주는 듯한 쉴드가 있어서 좋은 것 같았는데 이젠 그런 게 없어지는 것 같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물품이나 관물대, 신발장 주기(이름표)에 짝대기 하나 더 그리는 건데 뭐가 그리 좋던지. 꼭 게임하다가 레벨업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 가지 더 좋은 점은 더이상 전화하러 아래층으로 안 내려가도 된다는 것이다. 이등병 전용 전화기는 아래층에 있어서 전화하려면 전우조로 같이 가야했는데 이젠 일병 전화기가 2층에 있으니까 하고 싶을 때 혼자 가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KT 전화기만 써야 하다가 일반 공중전화를 쓸 수 있어서 102 보충대에서 입대할 때 엄마가 잡상인들에게 낚여서 산 LG U+ 전화카드를 써서 없앨 수 있게 됐다. 쓸데없는 물건을 좀더 줄일 수 있어서 좋다.








2015.6.1.월
(이미 유격 갔다와서 생활관 혼자 쓰는 줄 알았더니...)

  유격을 선발대, 후발대 나눠서 가는데 내가 쓰는 생활관에 나만 선발대라 이미 갔다왔고 나머지 동기들은 후발대라 이 날 유격을 가게 됐다. 그러면 일주일동안 나 혼자 생활관을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 쓴다는 생각에 굉장히 신났다. 공부하고 싶을 때 TV끄고 조용히 공부하고, 독서하고 싶을 때 조용히 독서하고, 일기도 쓰고, TV도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 볼 수 있다! 최근에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미국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그동안은 동기들과 취향이 달라서 자주 못 보다가 이젠 내 맘대로 정주행할 수 있게 됐다!

  ... 하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날 아침에 집합을 하더니 선발대 인원들을 다 모아서 한 생활관에서 생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망했다... 선임들이랑 써야한다니... TV는 개뿔... 유격 먼저 갔다와서 꿀 빨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선임들과 쓰는데다가 경계도 매일 들어가게 됐다. 좋다가 말았네... ㅠㅠ








2015.6.3.수
(나방 먹는 참새)

  우리 부대엔 나방이 많다. 나방이 나중에 크기가 커지면 주먹만해지기까지 한다. 그걸 '팅커벨'이라고 은어로 부른다. 털이 북실북실하고 눈도 징그럽고 까맣다. 그래서 나방이 싫은데 오늘 아침 경계를 서다가 재밌는 장면을 보았다.

  경계 초소에는 밤에 불을 많이 켜둬서 벌레가 많이 모인다. 그 다음 아침이 되면 대부분 벌레들은 어딘가 사라지고 나방만 수십마리 남아 조용히 벽이나 바닥에 붙어서 잔다. 그러다 좀 지나면, 참새 몇 마리가 날아와서 비몽사몽하고 있는 나방들을 낚아채가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방은 참 멍청하고 참새는 똘똘하다고 느꼈다. 나방은 밤새 파티를 즐기다가 아침에 뻗은 상태로, 되게 한심하게 인생을 보내는 것 같은 반면, 참새는 약삭빠르게 나방들이 잠드는 시간에 맞춰 큰 노력 들이지 않고도 먹잇감을 농락하다가 맛있게 식사를 한다니. 징그럽고 짜증나는 나방 수를 참새가 줄여주니 참새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고 기특했다. 그걸로 얼마나 줄겠냐마는 경계가 잠깐 심심해지던 차에 좋은 구경거리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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