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3일 수요일

일병 일기 1 - 일병이 돼서 좋은 점 / 이미 유격 갔다와서 생활관 혼자 쓰는 줄 알았더니... / 나방 먹는 참새

2015.5.29.금
(일병이 돼서 좋은 점)

  일병 진급을 했다. 이등병때는 뭔가 잘못을 해도 약간 봐주는 듯한 쉴드가 있어서 좋은 것 같았는데 이젠 그런 게 없어지는 것 같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물품이나 관물대, 신발장 주기(이름표)에 짝대기 하나 더 그리는 건데 뭐가 그리 좋던지. 꼭 게임하다가 레벨업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 가지 더 좋은 점은 더이상 전화하러 아래층으로 안 내려가도 된다는 것이다. 이등병 전용 전화기는 아래층에 있어서 전화하려면 전우조로 같이 가야했는데 이젠 일병 전화기가 2층에 있으니까 하고 싶을 때 혼자 가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KT 전화기만 써야 하다가 일반 공중전화를 쓸 수 있어서 102 보충대에서 입대할 때 엄마가 잡상인들에게 낚여서 산 LG U+ 전화카드를 써서 없앨 수 있게 됐다. 쓸데없는 물건을 좀더 줄일 수 있어서 좋다.








2015.6.1.월
(이미 유격 갔다와서 생활관 혼자 쓰는 줄 알았더니...)

  유격을 선발대, 후발대 나눠서 가는데 내가 쓰는 생활관에 나만 선발대라 이미 갔다왔고 나머지 동기들은 후발대라 이 날 유격을 가게 됐다. 그러면 일주일동안 나 혼자 생활관을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 쓴다는 생각에 굉장히 신났다. 공부하고 싶을 때 TV끄고 조용히 공부하고, 독서하고 싶을 때 조용히 독서하고, 일기도 쓰고, TV도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 볼 수 있다! 최근에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미국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 그동안은 동기들과 취향이 달라서 자주 못 보다가 이젠 내 맘대로 정주행할 수 있게 됐다!

  ... 하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날 아침에 집합을 하더니 선발대 인원들을 다 모아서 한 생활관에서 생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망했다... 선임들이랑 써야한다니... TV는 개뿔... 유격 먼저 갔다와서 꿀 빨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선임들과 쓰는데다가 경계도 매일 들어가게 됐다. 좋다가 말았네... ㅠㅠ








2015.6.3.수
(나방 먹는 참새)

  우리 부대엔 나방이 많다. 나방이 나중에 크기가 커지면 주먹만해지기까지 한다. 그걸 '팅커벨'이라고 은어로 부른다. 털이 북실북실하고 눈도 징그럽고 까맣다. 그래서 나방이 싫은데 오늘 아침 경계를 서다가 재밌는 장면을 보았다.

  경계 초소에는 밤에 불을 많이 켜둬서 벌레가 많이 모인다. 그 다음 아침이 되면 대부분 벌레들은 어딘가 사라지고 나방만 수십마리 남아 조용히 벽이나 바닥에 붙어서 잔다. 그러다 좀 지나면, 참새 몇 마리가 날아와서 비몽사몽하고 있는 나방들을 낚아채가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방은 참 멍청하고 참새는 똘똘하다고 느꼈다. 나방은 밤새 파티를 즐기다가 아침에 뻗은 상태로, 되게 한심하게 인생을 보내는 것 같은 반면, 참새는 약삭빠르게 나방들이 잠드는 시간에 맞춰 큰 노력 들이지 않고도 먹잇감을 농락하다가 맛있게 식사를 한다니. 징그럽고 짜증나는 나방 수를 참새가 줄여주니 참새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고 기특했다. 그걸로 얼마나 줄겠냐마는 경계가 잠깐 심심해지던 차에 좋은 구경거리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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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1. 나방 먹는 참새.. ㅎ 묵상거리구료^^
    나방은 밤새 파티를 즐기다가
    아침에 뻗은 상태로 한심하게 인생을 보내는 반면,
    참새는 약삭빠르게 나방들이 잠드는 시간에 맞춰
    큰 노력 들이지 않고도 먹잇감을 맛있게 식사를 한다니..
    참새
    그 작고 앙증맞은 몸매에 날렵한 움직임까지
    앞으로 더더 사랑할 것 같소~

    새벽같이 일어난
    참새의
    부지런함이 큰노력이라 생각하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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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일병 진급 당연히 축하했고^^
    이어
    상병 앞으로~ 궈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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