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5일 월요일

일병 일기 6 - 선임에게 불똥 튀기지 말자 / 첫 후임이 왔는데 사실 내 코가 석자라서...

<2015.6.14.일>
(선임에게 불똥 튀기지 말자)

  오늘 다목적실에 모여서 상병된 지 얼마 안 된 군번 이하 전체가 혼났다. 나는 왜 갑자기 혼나는 건지 좀 얼떨떨했다. 내 생각에 난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내가 맡은 일을 하면서 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날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태도 문제로 모여서 혼나는 것 같았다. 대강 '짬이 안 차면 안 찬대로 행동하는 게 맞다'는 게 요지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해당 내용에 어긋나는 사소한 규정 위반이 쌓이고 쌓이다가, 누군가 선임 뒷담화를 하다가 걸리면서 선임들이 '얘들 안 되겠다. 그동안 편하게 대해줬더니 우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한번 날 잡아서 털기로 한 것 같았다.

  어딜 가든지 입 조심이 중요한 것 같다. 얼마전에도 그것때문에 일기를 썼는데, 이번 기회에 더 확실히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한테 아직 문제가 많이 없더라도 앞으로 생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또 사소하게 규칙 위반하는 것도 안 해야겠다. 자신만 혼날거라고 여태는 생각해왔는데, 한명 때문에 선임들이 혼나는 경우가 꼭 생기기 때문이다.







<2015.6.15.월>
(첫 후임이 왔는데 사실 내 코가 석자라서...)

  오늘 처음으로 후임병이 생겼다. 저녁무렵에 생활관에서 쉬고 있는데 신병이 왔고, 지금 행정반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호기심에 행정반에 살짝 가 봤다. 짐을 담은 의류대가 놓여있고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은 천○○이었다. 이름만 봤을 땐 약간 드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후임인데 그러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하면서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얼마동안 동기들과 잡담을 하고 있으니까 문이 열리며 이 일병이 신병의 의류대를 메고 신병을 데리고 들어왔다. 다행히 이름처럼 거칠 것 같은 애는 아니었다. 첫인상은 몹시 조용한 사람으로 보였다. 약간 멍한 것 같이 생겼는데, 세종대의 호사카 유지 교수 닮은 애였다. 실제로 성격이 몹시 조용해서 애들이 나랑 비슷하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선임들하고 있을 땐 되게 조용한데 선임들 눈에 저렇게 보이겠구나'하는 예상이 들었다. 왜 선임들한텐 동기들에게 하듯이 말장난도 하고 먼저 말도 걸고 하는 게 안 되는 걸까? 사실 선임이나 후임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좀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나보다 더 조용하고 특징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기들이 하는 말이, 걔가 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거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몇 없고 대부분 사람들이 판타지, 로맨스, SF같은 재미를 위해 읽는 책을 보는 걸 독서라고 하니까 나랑 닮았다 하기엔 아직 섣부른 것 같았다. 그런 독서는 독서라기보다 오락에 가깝다.

  지금 걱정해서 뭐할까? 나중에 걔도 동기들이 들어오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후임이 들어오니 안 좋은 점도 생겼다. 동기들끼리 있다가 동기 아닌 사람이 같은 방에 있으니까 서로 불편한 것 같다. 약간 귀찮기도 하다. 아직 2주대기라 어딘가 가야할 때 전우조로 누군가 같이 가 줘야 하고, 군 생활 예절이나 규칙을 알려주는 것도 성가시다. 관물대, 침상 정리 방법도 알려줘야 했다. 이렇게 말하니 야박한데, 솔직히 안 귀찮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필요한 걸 알려줘서 빨리 독립할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

  중대 대부분 인원이 사격하러 갔을 때는 천 이병 혼자 있었는데, 그땐 좀 심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크게 신경쓰이는 건 아니었다. 아직 친해질 일이 아예 없었으니까 당연한 거다. 경례를 그동안 선임한테 하기만 하다가 이제 받는 입장이 되니까 무척 어색했다. 군 생활이 길다고 해도 벌써 후임이 들어올 시기가 됐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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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1. 한 일병님
    분명한 건
    축하받을 일이란 것이오~^^
    축하!
    당연 어색하겠지만
    세상은 온통 만남의 연속이라오.
    그 어색함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침을 꼴깍`` 삼키며
    먼저 인사하고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더이다ㅋ
    말은
    언제 어디서나 조심해야하오.
    마음에서 나오는 산물이니 여러번 생각하고 목구멍으로 걸러서 세치 혀를 낼름~ㅋ
    알고있겠으나
    함부로 안하는 건 좋으나
    함구하고 사는 건 좋지않소.
    가벼운 농담과 분위기를 좋게하는 말은 소통의 꽃으로 피어나는 법이니
    센스있는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길 바라오.. 안줼솬율님처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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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글고
    쫄아있을 천 이병에겐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생각해서
    형님답게 말 좀 자주 걸어주길 바라오.
    글고 하나 더
    독서라고 표현하긴 거시기해도~
    판타지, 로맨스,에스에프,만화책.. 쟝르 무시 마시오~
    좋은책도 간간히 있쏘.. 강풀님 같은~ 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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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즘엔 좀 친해져서 같이 잘 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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