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7일 수요일

일병 일기 9 - 구석탱이에서 선임들 사이로

  선임들이 생활관을 바꾸자는 제안을 해왔다. 우리 생활관은 건물 한 구석에 있어서 선임이나 간부가 지나갈 일이 적어서 뭔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해도 걸릴 일이 잘 없었는데, 그래서 '언젠가 선임들이 이 점을 노리고 바꾸자고 할 것이다'하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바꾸려는 생활관은 패티김 생활관으로, 행정반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생활관이다. 생활관을 옮기면 선임, 간부의 눈에 더 자주 띄게 돼서 생활을 더 잘 해야하는 단점이 생기지만, 나에게는 장점이 많이 생겨서 난 이사에 찬성했다.

  첫 번째 장점은 책 읽거나 공부하러 가기 편하다는 점이다. 이게 가장 나에겐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행정반의 상담실이나 본부중대에 있는 도서관이 그동안은 상당히 멀어서 한번 갔다오기 시간이 애매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게 돼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TV를 안 보기로 마음먹은 터라 더 잘 된 것이다. 내 동기들은 이제 날 신경쓰지 않고 TV를 볼 수 있으니 좋고, 나는 TV한번 보려고 눈치보지 않아도 돼서 서로 잘 됐다.

  두번째 장점은 선임, 간부의 눈에 많이 띄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몰래 뭘 해도 잘 안 들켜서 규칙을 대부분 따르는 편인 내쪽이 손해보는 것 같았는데, 앞으로는 더 많이 혼나게 될테니까 쭉 잘 한다면 반사 이익을 챙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세번째 장점은 가용병력 부를 때 먼 거리를 뛰어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가용 불러서 뛰어갔더니 이미 선임들이 필요 인원을 다 채워놔서 허탕치고 생활관으로 돌아간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당당히 일 도와주러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꾸 이렇게 눈도장 찍다보면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많이 될 거라 예상한다.

  그 외에도 PX랑 가까운 것, GPS바꾸기 편한 것, 일병 전화기가 가까운 것 등 자잘한 장점들이 많다. 물론 단점들도 있지만 그런 건 그냥 크게 불편한 건 아닌 것 같다.

  생활관 바꾸는데 모두 동의한 후 중대장님께 대표병들이 찾아가 바꾸기로 한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 중대장님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선임들이 압력을 넣은 게 아니냐'고 하며 선임들에게 바꾸는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선임들이 대답을 했지만 중대장님은 여전히 못 믿으셨고, 그러다 생활관 이사가 무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나섰다. 진짜 이 일기에 쓴 내용을 포함, 온갖 자잘한 이유까지 다 대고 단점까지도 긍정적으로 포장해서 바꾸는 게 우리에게도 이익이라는 걸 쫀쫀하게 어필했다. 평소에 말이 잘 없어보이는 내가 결정적인 순간에 많이 도와줬으니 선임들이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생활관 바꾸는 걸 원하기도 했고. 중대장님은 결국 이사를 허락하셨고, 그렇게 생활관을 바꿔서 지금은 새로운 곳에서 살고 있다. 바꾸니까 사람 왕래도 많고 좋은 것 같다. 새 출발하는 기분이 몹시 상쾌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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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1. 축하!
    무엇을?
    원하던 생할관 바꾼 것도 바꾼 것이지만,
    그대의 적극적 사고 전환에 박수를 보내는바이오!
    중대장님..
    흠, 신뢰가 급상승..ㅎ
    새출발, 상쾌함.. 참 듣기좋은 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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