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31일 금요일

일병 일기 13 - 대대전술 평가 행군 실패

* 30km 평지, 내리막길 많음. 이 조건만 보면 꿋꿋이 하기만 하면 완주하겠다고 생각했음. 유격 행군 잘 했으니까 괜찮겠지. 긴장은 됐지만 결심은 확실히 해서 무섭진 않았음.

* 전날 지뢰지대 때문에 휴식한 이후 군장 쌈. 군장 품목이 정해져있고 그게 공문으로 내려와서 그거 보고 쌈. 임무카드에 있는 품목보다 덜 들어있는 것도 있고, 대부분은 비슷했는데 화생방 보호의 세트, 침낭도 (여름인데도) 결속하게 되어 있어서 약간 달랐음.

* 보호의는 군장 결속한 건 처음이었음. 무게는 3-4 kg. 하나만 놓고 보면 별로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속하고 매 보면 확실히 차이가 느껴짐.

* 군장 총 무게 30kg + 단독군장. 불필요한 부속물 다 뗌. 호루라기, 총기손질도구(원래 단독군장 물품이지만 공문에 안 적혀있어서 뗌. ㅋ) 구급대, 구두약, 구두솔 등.

* 출발할 때 개인완주 1박 2일, 전원완주 2박 3일 포상휴가 조건 생김. 이때는 중대원 전부 사기 충만.

*트럭에 군장, 사람 꽉꽉 채워서 출발지점으로 감. 도착하자마자 소나기. 금방 그침. 군장검사 한다더니 안 했음.

*맏선임이 내 군장 끈을 보더니 이상하게 되어 있다고 고쳐주심. 곧 출발할 것 같아서 괜찮다고 했는데 해주셔서 감사했음.

*트럭에서 조 일병님이 내 단독군장에 달린 x반도를 풀어주셔서 감사했음. 짐, 사람 꽉꽉 들어차 있어서 공간이 많이 좁았는데도 도와주셔서 감사했다.

By 육군학사장교총동문회 (Own work) [CC BY-SA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 산 꼭대기 출발 후 쭉 내려옴. 50분 동안 이동. 다리보다 어깨 아픔. 군장 끈 길이가 짧아 왼팔 피가 안 통했는지 왼손 새끼손가락 포함 손가락 두 세개정도 저렸음. 손으로 어깨와 가방끈 사이 받쳐서 피 통하게 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했다가 하면서 걸음.

* 50분 행군 후 10분 휴식. 무게 때문에 숨쉬기 힘들었는데 휴식해서 군장 내렸을 땐 살 것 같았음. (살아있다는 게 느껴졌음) 물 아껴 마심. '이번엔 다른 병사들 다 물 떠왔겠지'하고 다른 병사들에게 물을 자발적으로 권하진 않음. 그랬다가 나중에 내가 죽을지 모르니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번엔 아예 누워서 쉬게 해줌. 저녁이라 누워있으니 시원하고, 방탄헬멧 벗으니 그냥 그대로 누워 자도, 누워 자다 죽어도 행복할 것 같았음.

* 잠깐의 휴식 후 1:20분동안 행군. 10분 휴식때 군장 끈 늘여서 어깨는 덜 아팠음. 산을 내려와 군인 아파트, 군인 회관 지나갈 때 아직도 한참 남았고, 부대가 바로 길 건너인데 못 간다는 점이 너무 애간장타게 만듦. 군인회관 지나갈 때 예전부터 거기 묵어보고 싶었는데 다음번 면회 때는 진짜 거기 있어도 괜찮을거라 생각함. 새 건물, 시설 good. 군인 아파트 : 시골에 있지만 신도시 아파트 모습. 멀리서만 보다 직접 보니 시설이 더 좋아보임.

* 할아버지, 할머니 몇 명 시원한 집 마당에서 뭔가 하는 걸 봤음. 부럽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 듦.

* 점점 오르막 길로 접어듦. 앞 사람 가다 서다 갑자기 해서 부딫히게 돼서 짜증 났음. 간부가 군장 내리고 휴식하래서 그렇게 했더니 더 계급 높은 간부가 신경질적으로 다시 군장 들고 행군하래서 이게 뭔가 싶었음.군장 들었다가 놨다 하는 것도 행군하는 것만큼 힘들었음.

* 부상자, 군장 포기자(단독군장으로 전환하는 사람) 속속 발생. 나도 포기하고 싶었는데 그 생각이 든 순간 앞서 가던 어떤 선임이 주저앉았고, 그때 내가 따라서 포기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열외할 것 같아서 좀더 가다가 잠시 멈춰야겠다고 생각함.

* 오르막에, 군장이 무겁다보니 점점 앞사람 따라가기가 힘들었음. 아예 포기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나는 걷기는 하되, 옆으로 빠져서 천천히 걷고, 나중에 휴식할 때 원 대열에 합류하기로 함.

* 다행히 어떤 종교 시설 앞에서 휴식하라는 지시가 떨어져서 다시 대열에 합류함. 군장 깔고 그걸 쿠션삼아 반은 앉은 자세, 반은 누운 자세로 쉼. 의외로 부상자가 몇 명 됐음.

* 간부들이 너무 무리한 행군이라 판단했는지 주둔지 복귀를 결정. 이제 살았다는 생각. 그냥 거기 누워서 시원하게 자고 싶단 생각. 신 상병님 왈, '지금 누가 날 옆에 강물에 던져도 아무 저항 못하고 떠내려갈 것 같다'했는데 내가 몇 분 전에 했던 생각이랑 똑같아서 신기했다.

* 버스에 군장, 사람 꽉 채워서 복귀 : 사고 나도 안 죽겠다. 군장이 에어백 역할을 해서? ㅋ 군장이 시야를 가려서 앞도 안 보이고 옆도 안 보였다.

* 행군 실패했지만 우리 수준을 알 수 있었고 체력단련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 그래도 보호의, 침낭, 텐트 다 넣고 기본 군장 품목 다 싸고 FM대로 행군한 거라 그 정도 간 거면 선방한 듯. 총 시간 3시간(휴식 시간 포함) 행군거리 14km. 고생했고, 힘들었다. 큰 훈련 다 끝났으니 푹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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