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8일 월요일

일병 일기 23 - 추석 휴가 / 테마가 있는 부모님 면회 외출


2015.09.25.금 (불모지 22일째)
* 추석 휴가
  • 불모지에 있다가 대대로 내려오니까 휴가같았다. 추석 연휴때문에 쉬는데다가 시설이 훨씬 좋고 잡무도 없고.
  • 후임 새로 세 명 들어옴. 새로운 얼굴이 나한테 경례할 때마다 겸연쩍은 웃음이 나옴.
  • 뉴스 한달간 전혀 안 보니까 내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어 좋음.






 2015.09.28.월
* 테마가 있는 부모님 면회 외출

By Gcd822 (Own work) [CC BY-SA 4.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  인제 돌아다님. 원대리 자작나무 숲, 인제 38 대교, 소양호 저사댐 봄. 토목 공부 목적 견학.
  • 인제 38 대교에선 토목이 돈이 많이 드는 만큼 가장 경제적으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음. 교량 높이, 배수관 필요성, 점검 난간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By Gcd822 (Own work) [CC BY-SA 4.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 소양호 저사댐에선 토목 구조물은 협동의 결과물임을 알게 됨. 그런 작은 댐 만드는 데에 수자원하는 사람들이 물을 어느정도까지 저장가능한지 계산하고, 수리학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수압을 견뎌야 하는지 계산하고, 구조하는 사람들이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야할지 결정하고, 철콘하는 사람들이 철근 배근, 콘크리트 배합 결정하고, 시공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재료 조달하고 장비, 인력은 어느정도 쓸지 결정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토목인들이 협력해야 됨.
  • 그동안 기업 간 경쟁만 생각해왔고, 그래서 냉정한 분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협력이 중요한 분야라는 걸 알게 됐고, 토목공학이 의외로 괜찮은 분야라고 생각했다.
  • 군대에 있을 때, 병사들끼리 외출, 외박 나가면 거의 게임만 하고 끝나지만 부모님과 나가고, 특히 같은 전공을 가진 아빠와 견학을 다니니까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걸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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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3일 수요일

일병 일기 22 - 나는데 소리나는 새 / DMZ 다람쥐 또 발견 / 작업 도중 북한군이 노래 부르는 걸 듣다

2015.09.20.일
* 나는데 소리나는 새
  • 일요일에 초소 밖에 나와 선임 한 명과 잡담 중 신기한 광경 목격.
  • 제비만한 몸집의 새가 산 위 공중에 떠서 빠르게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나는데 바람 가르는 소리가 분명하게 "휘익-휘익" 났음.
  • 새가 빠르게 나는 게 신기한 게 아니라 날 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나는 게 처음 본 장면이라 신기했음.
  • 농담삼아 '북한 무인 항공기 아니냐'는 소리를 함. 예전에 북한군이 '두루미'라는 무인 항공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였음.




 2015.09.22.화
* DMZ 다람쥐 또 발견
저작권: 퍼블릭 도메인

  • 북한군 초소에서 총안구를 열어서 위험할 수 있어서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은엄폐한 후 휴식 중에 다람쥐를 발견했다.
  • 동물 새끼들은 대부분 귀엽다. 신기하게. 다람쥐는 다 커도 귀여운듯. 바위 위에 앉아서 털 고르고 꼬리 다듬고 몸 단장함. 눈이 동그랗고 반짝반짝해서 귀여웠음. 호두만한 머리로 우릴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 우리가 다람쥐 사는 곳을 부수러 온 걸 알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겠나. 우리부터 살아야지.




2015.09.23.수
* 작업 도중 북한군이 노래 부르는 걸 듣다
  •   무슨 사랑 노래였는데, 북한에도 그런 노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노래 부르다가 갑자기 총 쏘면 싸이코같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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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6일 수요일

일병 일기 21 - 흙 계단을 만들자

2015.09.15.화 - 불모지 12일째, 작업 7일째

* 어지르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같이 치워줘야 되지? 한두번이면 이해하겠는데 아닌 경우엔 좀 짜증난다.

* 극히 사소한 일로 선임이 뭐라고 할 때 싫다. 특히 자기도 제대로 안 하면서 뭐라고 할 때.

* 동계 지뢰공(?)으로 추정되는 물체 발견. 안에 지뢰가 있을지 몰라서 잠시 작업 중단. 나중에 동계 지뢰공이 아닌 반찬통이었다는 게 밝혀짐. 위험한 물건이 아니었다니 다행이다. 실제 동계 지뢰공은 이렇게 생겼단다.

* 중대장님 vs 이 상병님 다리 씨름 / 중대장님 vs 김 상병님 팔씨름 : 모두 중대장님 승리...

  • 중대장님 힘이 저렇게 센 줄 몰랐다. 두꺼운 팔 다리가 모두 근육이었던건가...?
  • 나도 운동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 체력 급수 채웠다고 만족할 게 아니라...

* 길 뚫는 작업이 거의 산 꼭대기로부터 중간까지 완료됨. 경사가 정말 심하다. 홈(작업 들어가기 전 대기하는 곳)에 있을 때 위를 올려다보면 큰 바위가 있었는데 거길 넘어서 더 올라갔다. 작업 도중 뒤를 돌아보면 낭떠러지고, 그동안 열심히 뚫은 길이 보여서 뿌듯했다.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 출발 지역 초소(언덕에 있는 것)보다 높이 올라감.
  • 우리는 숲 그늘 안에 있어서 덥진 않았음. 모기가 나오기 시작. 바위 산이 커다랗게 그늘을 만들어줘서 좋았다. 산이 가리지 않은 쪽은 땡볕이었다.







2015.09.16.수 - 불모지 13일째, 작업 8일째

* 계단 만드는 게 재밌다. 비록 토목공학과 큰 관련은 없지만 토질역학이나 정역학의 원리가 계단 만드는 데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귀찮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흙 계단을 만들고 잘 다지는 것까지만 했다. 그런데 길 뚫는 속도가 별로 빠르지 않고 뒤에서 내가 할 일이 없는 경우도 생겼기 때문에 계단을 더 보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중대장님께서 '계단을 더 신경써서 만들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에 흙 계단 이상의 것을 시도하기로 했다. 간단히 설명하면 등산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계단이 내가 구상한 거였다. 그림으로 그리면,

CC BY 4.0


이렇게 나무를 톱으로 썰어 깊게 말뚝을 박고, 가로로 나뭇가지 굵은 것들을 올려 계단의 딛는 부분의 흙이 아래로 밀려내려가는 것을 막는 형태다. 네 계단을 오전동안 만들었는데, 세 계단은 성공적이고 나머지 하나는 좀더 튼튼한 횡목을 찾아 강도가 약한 나무를 끼워둔 것을 교체하면 될 것이다. 톱이 하나 더 있다면 소대장님이 길 뚫는 동시에 나도 계단 만드는데 필요한 말뚝과 가지들을 만들 수 있으니까 좋겠지만, 지금은 하나밖에 없으니 속도가 안 나서 아쉽다.






2015년 9월 14일 월요일

일병 일기 20 - OP에서 과자 봉지가 빵빵한 이유

2015.09.11.금 - 불모지 여덟 째 날, 작업은 5일 째


* 소초가 있는 숙소엔 안개가 심했고, 작업을 하는 아랫쪽 사면 역시 안개가 심했다. 50M 전방이 안 보일 정도였다. 날씨는 시원했음.

* 경계 조가 늦게 와서 통문이 약간 늦게 열렸다. 8시 30분 경 작전지역 투입.

* 자꾸 내가 토목과라고 계단 만들라고 해서 약간 웃겼다. 토목이랑 계단이랑 크게 상관 없는데 ㅋ

* 10:10에 비가 와서 철수했다. 10:38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오니 안개가 더 심해져서 25M 전방까지만 보였다.

* 점심 먹고 다시 나가야될 것 같아서 '일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중대장님께서 나갈 것 같이 하시다가 안 나가고 주말까지 쉰다고 하셔서 너무 좋았다.







2015.09.14.월 - 불모지 열 한번 째 날, 작업은 6일 째

* 날씨

  • 윗동네 : 햇빛, 안개(100m까지만 보임) , 바람
  • 아랫 동네 : 맑고 신선


* 7:47 복장 착용, 08:05 남책 통과, 08:19 북책 통과, 작업 시작, 11:20 철수

* 오전에 6m정도 전진.

* 쇠파이프 (손 두 뼘 길이, 지름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탄클립, 탄통 뚜껑, 의자만한 바위 발견.

* 계단 많이 만듦. 경사가 심해져서.( 한 45도 정도 경사)

* 다람쥐가 윤형 철조망 바닥에 뭉쳐져 있는걸 타고 다니다가 미끄러져서 땅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하는걸 봤는데 귀여웠다. 그러다가 자기가 파둔 굴로 들어갔다가 다시 철조망쪽으로 나옴. 다람쥐도 굴을 판다는 걸 알게 됨.

* 팔 하박 길이정도 되는 얇은 뱀이 우리가 작업하던 곳에서 황급히 빠져나와 옆의 흙, 나뭇가지 버리는 곳으로 도망침. 군대와서 처음으로 뱀 봤다.

* "토목과인데 이것도 몰라?" 중대장님 말씀에 자극이 돼서 더 열심히 일했음. 선임들이 쉬라고 해도 자존심 상해서 계속 흙과 돌로 계단 만들고 계단 평평하게 함. 사실 토목이랑 흙 계단이랑 큰 관련 없지만 왠지 그랬다.

* 그래도 작업 모두 끝나고 숙소돌아왔을 때 공부만 하지는 못하겠더라. 조금만 하다가 개인정비, 휴식, 내일 작업 준비하니까 잘 시간 됨.

* 어떤 사람이 어느 분야에 소질이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토목과에서 2년이나 있었고, 성적도 양호하지만 별로 아는 게 많지 않다. 공부를 해도 진도가 천천히 나가게 되고 숫자 감각도 별로 안 좋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 OP에서 과자 봉지가 빵빵한 이유

사진 출처


  • OP에서 누군가 과자를 꺼냈는데 봉지가 아주 빵빵해서 '질소 과자'라고 하는 걸 들었다. 페이스북 등에서 우리나라 과자는 양이 얼마 없고 공기만 잔뜩 들어있다고 비난하거나, 과자 봉지들을 묶어서 한강을 건너는 풍자 내용이 종종 돌아다니는데, 아마도 그걸 봤는지 똑같이 욕하려 했다.
  • 내가 여태껏 본 과자봉지들은 그 정도로 빵빵하진 않았다. 그래서 의심이 들었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무작정 다른 사람들 따라서, 따져보지 않고 비난해도 되는 걸까?
  •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OP는 고지대니까 기압이 낮은 반면, 과자를 만든 공장은 저지대니까 기압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만들어진 밀봉된 봉지 안에는 고지대의 낮은 기압보다 높은 기압의 공기가 들어있을 것이고 공기는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니까 봉지 안의 공기가 밖으로 나오려고 해서 봉지가 팽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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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0일 목요일

일병 일기 19 - 불모지 돌=감자

2015.09.10.목 - 불모지 일곱째날, 작업은 4일째


* 수요일까진 시간이 빨리 갔는데 이제 익숙해져서 그런지 시간이 천천히 감.
* 돌이 많이 나오는데 감자밭에서 감자 캐는 기분일 정도로 많이 나옴.

이 사진에서 보이는 감자를 돌멩이로 바꾸면 딱 불모지 작업이다. (저작권 : 퍼블릭 도메인)


* 작업 중 이제 쇳덩어리는 거의 안 나오고 돌만 잔뜩 나옴. 경사가 점점 생겨서 계단을 만들라는데 중대장님은 대강 흙계단 만들라고 하고 가버리시고 소대장님, 선임들은 돌 계단을 원하셔서 어느 말을 따라야 할지 몰랐음. 같이 계속 작업하는 건 선임들과 소대장님이니까 일단 돌계단쪽으로 하기로 함.

* 황금마차를 처음 이용해봄. 진짜 이름대로 노란 색이었다. 노란 색 길다란 트럭에 물건 담아둔 선반이 있고 거기에 있을 만한 건 다 있다. 처음에 보병 애들이 박스를 몇 개씩 갖고 가길래 부식 나르는 건가 했는데 몰아서 물건을 잔뜩 사서 그런거였다.(부식이 아니라 개인이 먹을 간식들 잔뜩 담아 둔 거였음) 소초가 산꼭대기에 있어서 따로 PX가 없기때문에 이동식 PX인 황금마차가 오는데 늘 오는 게 아니라 날씨가 안 좋으면 안 오고, 일주일에 한번씩 와서 병사들이 간식을 잔뜩 사서 쟁여놓고 먹는다.

* 전압기(?) 공사로 op올라가는 도로가 막혀서 차 타고 올라가지 못했다. 중간에 내려서 한참 걸어 올라가야해서 힘들었다.

* 통신반에서 우리 방 안에 있던 사지방 컴퓨터를 밖으로 빼내는데 정보장교님 TV 파워 선을 없애서 한동안 정보장교님이 화 나셨음. 다행히 통신반에서 다른 거 갖다줘서 해결.

* 물탱크 고장 → 샤워 불가였는데 고쳐져서 이틀만에 샤워했다.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 중대장님께서 처음 카드 게임인 '뱅'을 하셨는데 전부 다 학살하셔서 놀랐다. 내가 처음에 왼쪽에 있는 허 일병을 마구 때렸는데 부관이라서 다행이었다. 난 무법자였으니까.

* 뱅 하는데 시간이 빨리 가서 아쉬웠다.





군대 일기 목차




2015년 9월 9일 수요일

일병 일기 18 - 불모지 작전 초기

2015.09.09.수 - 불모지 여섯 째 날, 작업 3일 째

* 아침 안개 많이 낌. 한 100m 이내밖에 안 보였음. 그래서 작업 안 할 줄 알고 기대함.
* 중대장님 회의 후 그냥 가게 됨. 앞이 안 보여서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막상 차 타고 작전지역 내려가니 거기엔 안개 없고 구름만 좀 있고 햇빛 비쳐서 위아래가 날씨 차이가 많이 났음. 신기했다. 숙소가 구름속에 있었던 건가 그럼?
* 구름 움직이는 속도가 엄청 빨라서 신기했음.
* 안 좋은 꿈 꾼 사람, 귀신 본 사람 좀 있었음. 난 좋은 꿈 꿨는데. 아무튼 조심해야겠다.
* 작업 중 나온 물건들
  - 옛날 숫가락(모든 금속 제품들은 심하게 부식된 상태였음. 쉽게 바스러질 정도이고 적색 녹으로 전부 덮임)
  - 옛날 크라운 산도 봉지(개당 50원이라고 적혀있었음. 산도 하나에 50원이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산도 봉지는 다른 금속 물품들에 비해 보존 상태가 몹시 양호했음. 비닐은 썩는데 오래 걸린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총알 구멍 난 수통(이건 다른 조에서 발견)
  - M1 카빈 탄, 탄피, 탄클립, 탄박스, 탄창
  - 기타 알 수 없는 철재 원통형 물건들. 구두약으로 추정되는 납작한 원통 금속 용기도 있었고, 복숭아 통조림 모양의 원통도 나옴.
  - 불발 막대 수류탄
  - 기관총 탄, 탄두, 탄피
  - 작은 기름병 같은 것(금속제)
  - 수류탄 안전 손잡이
  - 이상한 경첩같이 생긴 물건(이건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기관총 탄약띠 연결할 때 쓰는 물건이었다)
이 그림에서 탄을 줄줄이 연결하는 검은색 금속 조그만 게 나중에 탄이 빠지고 나면 경첩같은 물건으로 보였다. (출처 : 나무위키 - M60 기관총 ,

CC BY-NC-SA 2.0 KR)

* 자꾸 녹슨 탄피나 탄이 나오니까 이게 지뢰제거, 수목제거하는 건지 유해발굴하러 온 건지 헷갈렸다.
* 크고 작은 돌이 많아서 갈퀴질 하기가 힘듦.
* 멀리서 간간히 야생동물들이 지뢰를 밟아 터지는 소리가 들림.
* 투입 후 오전에만 1시간 11분 일함. 일단은 오전에 2교대로 해서 작업 시간 짧았음.
* 작업한지 3일째 되니까, 처음엔 할 일없이 멍하니 구경하다가 이제는 각 반들이 동시에 자기 할일 찾아서 하게 됨.



군대 일기 목차

2015년 9월 4일 금요일

일병 일기 17 - 불모지 첫 날

2015.09.04.금 - 불모지 첫 날
(불모지 지뢰 제거 작전 첫 날)

  근 두달동안 DMZ에 가서 지뢰 제거, 초목제거하는 작전을 하는데 지원해서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 왔다. 처음에 가겠다고 한 이유는 지금 되돌아보면 참 어이없는 생각이라고 보이지만, 이랬다. 가장 큰 이유는 '군대에 기왕 온 거, 맨날 훈련, 연습만 하지 말고 실제 상황 한번 겪어보고 싶다'는 거고, 부차적인 이유는 첫째, '내 동기들이 전부 가는데 나도 가면 좋을 것 같다', 둘째, '포상휴가도 주니까 가면 좋을 것 같다'가 있었다. 이런 세 가지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들은 출발 전 몇 주간 직접 지뢰 보호의 세트를 입고 작업을 하고 짐을 운반해보니까 바보같은 거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호의는 차고 평지만 다녀도 진이 빠지게 했고, 그 상태로 경사가 심한 산 비탈에서 지뢰까지 찾아야 한다니... 굳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몹시 힘든 일이라는 걸 알만 했다. 총 몇 kg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TV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나온 적 있으니 나중에 정확한 무게를 알아봐야겠다. 보호의 세트엔 지뢰 전투화와 덧신이 있는데, 덧신까지 신으면 굽이 너무 높아서 (여자들 힐 신은 것보다 훨씬 높다) 잘못 걷다가 발목이 부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낭심 보호구는 땀이 많이 차고 다니는데 불편하게 했고, 다른 보호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강 이런 식이다... 출처(대한민국 육군 flickr)

CC BY-SA 2.0





  전날인 목요일에 차량에 짐을 몽땅 실었다. (전날 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여러 날에 걸쳐 필요한 장비, 물자를 준비하고, 운반하고 했었다. 전날 실은 건 말 준비해온 '모든' 물자를 실은 거였다) 그리고 출발하는 금요일 아침이 되자 일찍 일어나서 남아있는 짐들(옷가방, 개인물품, 세면도구)을 또 차량에 싣고 출발했다. 인제에서 양구까지, 양구에서 가칠봉 OP를 담당하는 부대까지 오랜 시간동안 차를 타고 이동했다. 해당 부대에 내려서 두돈반 트럭의 짐을 4/5톤 트럭에 옮겨 실었다.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두돈반이 OP까지 올라가지 못한다고 해서였다.
 
  짐을 옮기고 걸어서, 부대로부터 OP로 가는 길의 통문을 통과했다. 통문의 보병들은 보니까 신기했다. 우리는 공병이라 개인화기가 다 똑같이 소총 한 정이지만, 보병들은 망원경 달린 총도 있고, 유탄 발사기 달린 총도 있었기 때문이다. 방탄 헬멧도 약간 다르고 야투경 장착하는 장비가 달린 경우도 있었다. 우리에겐 없는 전투조끼도 입고 있었다.

  통문 통과 후 병력 승차 지점에서 4/5톤 트럭을 기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치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아직 DMZ 도착 전인데 왠지 긴장됐고 주위가 전부 안개로 둘러싸여 있고 키 작은 나무 여러 종류가 많이 있었다. 숲속에 누가 숨어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한 시간 정도 차 타고 가칠봉 OP에 도착했다. 짐을 전부 내리고 작전 물자, 숙영 물자로 분류했다.

마치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이 사진은 한라산 사진이다; 근데 딱 저렇게 생김 (CC0 Public Domain) 


  지형은 굳이 따로 운동을 안 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만 해도 운동이 될 것같은 가파른 경사지형이었다. 경사때문에 짐 나르는 게 많이 힘들었다. 점심은 전투식량으로 때웠다. 점심을 먹고 주위를 둘러보니까 가칠봉 뒤편의 해안마을의 잘 정리된 경작지 풍경이 몹시 좋았다. 펀치볼 지형이라 둘레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장자리 산 위가 거의 다 구름으로 덮여 있어서 문명(게임)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칠봉에서  남쪽을 보면 이런 풍경이 연상된다... (출처: http://squmaq.blogspot.kr/2014/08/blog-post_24.html )


  날씨가 신기하게 몇 시간 단위로 바뀌었다. 쨍쨍하게 맑다가 갑자기 구름끼고 찬 바람 불었다가 안개 꼈다가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점심 식사 이후 생활관을 만들기(?) 전에 잠시 쉬는 동안 백두산 부대 관측장교님의 지형, 주변 초소 설명을 들었다. 눈으로 보이는 지역에 북한군 초소와 북한군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 나라가 분단 국가라는 점을 상기시켜줬다. 망원경으로 북한 초소와 북한군이 내 놓은 길을 보면서 혹시나 누군가 돌아다니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초소에 들어가서 자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들도 여길 쳐다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북한이 이미 망해서 국경에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관측장교님이 하는 브리핑이 너무 절도있고 또박또박해서 멋있었다. 우리도 간혹 임무 브리핑 할 기회가 있는데 병사들이 외워서 더듬더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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