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6일 수요일

일병 일기 21 - 흙 계단을 만들자

2015.09.15.화 - 불모지 12일째, 작업 7일째

* 어지르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같이 치워줘야 되지? 한두번이면 이해하겠는데 아닌 경우엔 좀 짜증난다.

* 극히 사소한 일로 선임이 뭐라고 할 때 싫다. 특히 자기도 제대로 안 하면서 뭐라고 할 때.

* 동계 지뢰공(?)으로 추정되는 물체 발견. 안에 지뢰가 있을지 몰라서 잠시 작업 중단. 나중에 동계 지뢰공이 아닌 반찬통이었다는 게 밝혀짐. 위험한 물건이 아니었다니 다행이다. 실제 동계 지뢰공은 이렇게 생겼단다.

* 중대장님 vs 이 상병님 다리 씨름 / 중대장님 vs 김 상병님 팔씨름 : 모두 중대장님 승리...

  • 중대장님 힘이 저렇게 센 줄 몰랐다. 두꺼운 팔 다리가 모두 근육이었던건가...?
  • 나도 운동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 체력 급수 채웠다고 만족할 게 아니라...

* 길 뚫는 작업이 거의 산 꼭대기로부터 중간까지 완료됨. 경사가 정말 심하다. 홈(작업 들어가기 전 대기하는 곳)에 있을 때 위를 올려다보면 큰 바위가 있었는데 거길 넘어서 더 올라갔다. 작업 도중 뒤를 돌아보면 낭떠러지고, 그동안 열심히 뚫은 길이 보여서 뿌듯했다.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 출발 지역 초소(언덕에 있는 것)보다 높이 올라감.
  • 우리는 숲 그늘 안에 있어서 덥진 않았음. 모기가 나오기 시작. 바위 산이 커다랗게 그늘을 만들어줘서 좋았다. 산이 가리지 않은 쪽은 땡볕이었다.







2015.09.16.수 - 불모지 13일째, 작업 8일째

* 계단 만드는 게 재밌다. 비록 토목공학과 큰 관련은 없지만 토질역학이나 정역학의 원리가 계단 만드는 데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귀찮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흙 계단을 만들고 잘 다지는 것까지만 했다. 그런데 길 뚫는 속도가 별로 빠르지 않고 뒤에서 내가 할 일이 없는 경우도 생겼기 때문에 계단을 더 보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중대장님께서 '계단을 더 신경써서 만들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에 흙 계단 이상의 것을 시도하기로 했다. 간단히 설명하면 등산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계단이 내가 구상한 거였다. 그림으로 그리면,

CC BY 4.0


이렇게 나무를 톱으로 썰어 깊게 말뚝을 박고, 가로로 나뭇가지 굵은 것들을 올려 계단의 딛는 부분의 흙이 아래로 밀려내려가는 것을 막는 형태다. 네 계단을 오전동안 만들었는데, 세 계단은 성공적이고 나머지 하나는 좀더 튼튼한 횡목을 찾아 강도가 약한 나무를 끼워둔 것을 교체하면 될 것이다. 톱이 하나 더 있다면 소대장님이 길 뚫는 동시에 나도 계단 만드는데 필요한 말뚝과 가지들을 만들 수 있으니까 좋겠지만, 지금은 하나밖에 없으니 속도가 안 나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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